이명박 정부의 '환경파괴', '4대강 공사'에 맞서 창조한국당의 투쟁 활동, 관련뉴스입니다.
22일 오랜만에 잠실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청명한 가을밤, 한국시리즈가 벌어진 잠실야구장은 한 마디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 나이든 이와 젊은이들 모두가
어우러져 즐기는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했습니다.
불현듯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동대문 운동장은 1925년
훈련원 자리에 일제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종합운동장입니다.
당시에는 일제가 자랑하는 고시엔구장 다음으로 일본과 한반도에서
규모가 큰 야구장이었고, 그만큼 우리나라 야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입니다. 또 백범 김구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의 장례식을
치룬 역사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시는 그런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명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초현대적인 건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즘 서울에 크고 작은 공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공사판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서울이 어떤 곳 입니까?
조선시대부터만 따져도 600여년 수도이자, 우리의 전통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아닙니까. 그래서 헌법으로, 비록 「관습」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했지만, 그 지위가 보장된 곳 아닙니까.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나름대로 조화를 이룬 도시가
서울입니다. 그런데 서울을 걷다보니, 서울이 지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애써 그 흔적을,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있습니다.

피맛골을 보십시오. 피맛골은 조선시대 종로 시전거리에서
일반 백성이 고관대작의 말을 피해다닌다는 避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양반과 평민의 계급이 뚜렷했던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이 도성을
가로지를 수 있는 지름길 역할을 톡톡히 해온 곳입니다. 그런 피맛골을
철거하고(일부는 살려 보존하다고는 합니다만)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설 계획으로 벌써 많은 부분이 철거되었습니다. 철거과정에서
종로 시전행랑의 유구가 발견되고 백자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곳 뿐 아니라 4대문 안은 어디를 파보아도 유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가히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서울을 어떻게
보전하고 또 개발할 것인가에는 많은 사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일단 허물고 파헤쳐 흔적을 지우는 것은 역사에 반하는 것입니다.
하루 세 끼만이라도 배불리 먹기 위해 경제개발에 목매시던
박정희 대통령도 종합대학교 요건의 하나로 「대학박물관」을
내세웠습니다. 그 덕에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대학박물관이 역사유물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보전하는 구실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적인 운명을 걸고 추진하려는 이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 계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지금은 그런 정책적 배려가 없어 보입니다.
말로는 옛것을 살린다, 복원한다 그럴듯한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근대적 건물을 마구 허물어내고 있습니다. 시간의 흔적은 영광의 기록만이
아닙니다. 치옥의 기록 역시 시간의 흔적이고, 그 흔적은 기억의 정치를
통해 우리에게 영광의 기록 못지않은 역사의 가르침을 줍니다.
마구 허물어대는 근대적 건물의 대부분은 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대한제국 또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일제가 지은 건물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가 침탈당한 아픈 흔적입니다. 그러나 그 흔적,
상처는 기억의 정치를 통해 우리에게, 또 우리 후손에게 警戒케하는
가르침을 줍니다.
요즘 경술국치 100년(2010)을 맞아 남산에 남아있는 일제 통치의
흔적인 통감부자리를 보존하고, 중앙정보부 건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매우 뜻있는 운동입니다. 마치 요즘 유행한다는
성형을 하듯 보기에 흉한, 없었더라면 좋았을 흔적을 마구 지우는 것은
반역사입니다.
야구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습니다. 장충동 리틀야구장을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없애도 괜찮을까요? 그곳을 어린이
야구장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까요? 공원이 턱없이 부족한 서울이기는
하지만 그저 녹지이기만해서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시민이 즐겨 찾고
가족과 함께 즐기며 쉴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이 필요합니다. 녹지를
만든다는 가치를 내걸고 역사성이 있는 동대문교회 같은 해방촌 건물을
철거하고, 리틀 야구장을 없애고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고 그냥 부수는 것,
기억하기 불편한 과거라 해서 그런 기억을 되살리는 건축물을 없애는 것...
지금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역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가 미래와 대화하며 때로는 답해야 합니다.
그런 서울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서울이 아닐까요?
2009년 10월 27일
이 계 안 올림